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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인체 현상

신경이 느껴지지 않는 몸: 감각 소실 유전질환의 비밀

by west-find-1 2025. 5. 22.

신경이 감각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 감각 소실 유전질환의 시작

 

신체 감각은 우리가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수단 중 하나다. 차가운 공기, 뜨거운 불, 날카로운 물체에 대한 감각은 우리에게 위험을 알려주는 생존 본능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감각 자체를 태어날 때부터 느끼지 못하는 질환을 겪는다. 이들은 이른바 감각 소실 유전질환, 특히 선천성 무통증증후군(Congenital Insensitivity to Pain, CIP) 또는 유전성 감각신경병증(Hereditary Sensory Neuropathy, HSN) 등으로 분류된다. 이 질환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말초신경계에서 통증, 온도, 촉각 등의 감각 신호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며, 환자들은 스스로 다치고 있어도 자각하지 못한다. 이는 단순히 “고통을 느끼지 않는 특이한 능력”이 아니라, 치명적인 위험을 항상 동반하는 상태다.

이러한 질환을 유발하는 주요 유전자는 SCN9A, NTRK1, PRDM12 등으로, 이들은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감각 신경 섬유의 발달과 기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SCN9A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통증 수용체인 나트륨 채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신경 신호가 뇌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감각이 완전히 단절된 것처럼 느껴지며, 뜨거운 물에 손을 넣어도, 뼈가 부러져도 아프다는 인지를 전혀 하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감각 소실 유전질환은 외부 자극에 대한 방어기제를 없애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어릴 적부터 뼈 골절, 화상, 자가 손상 등의 위험에 계속 노출된다. 이들은 자신의 몸이 다쳤는지도 모른 채 일상생활을 이어가며, 때로는 손가락이나 혀를 무는 습관조차 스스로 멈추지 못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신경이 느껴지지 않는 몸: 감각 소실 유전질환의 비밀


고통 없는 삶의 역설과 생존을 위한 싸움

 

감각 소실 유전질환을 겪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엔 고통에서 해방된 듯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통증은 단순한 고통 이상의 역할을 한다. 우리 몸이 ‘자기 보호’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신호체계이기 때문이다.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매 순간 작은 상처가 큰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고, 관절에 가해지는 반복적인 무리가 누적돼 **조기 관절 손상(관절병증)**을 겪는 경우도 많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제대로 된 주의와 보호가 없다면 하루에도 수차례 자가 손상을 유발하며, 이로 인해 골절이나 피부 괴사 같은 심각한 부상으로 병원을 자주 찾게 된다. 신체 감각의 부재는 육체적인 문제를 넘어서 정서적·인지적 발달에도 영향을 미치며, 통증이 학습의 일부로 작용하는 유아기 발달 단계에서 이 질환은 중요한 학습 기회를 앗아간다.

이러한 질환에 대한 치료법은 현재까지도 매우 제한적이다. 일부 실험적 치료에서 유전자 편집기술(CRISPR-Cas9), 신경회복 촉진 단백질, 약물 개발이 시도되고 있지만, 유전자 수준의 복잡성감각신경 재생의 난이도로 인해 실용화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환자와 가족들은 대부분 예방 중심의 생활 방식을 택한다. 날카로운 물건을 피하고, 온도 조절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며, 자주 신체 상태를 점검하는 루틴이 필요하다. 또한 정기적인 병원 진단과 상처 치료, 물리치료 등이 필수적이다. 한편, 이 질환은 사회적 인식 부족으로 인해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아프지 않으니 괜찮겠지”라는 오해는 오히려 환자들에게 이중적인 고통을 준다. 이들은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설명할 수 없기에 외로움과 고립감까지 겪는다.

감각 소실 유전질환은 단순히 의학적인 신기함으로 끝날 질환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감각인 ‘통증’을 잃는 것이 어떤 삶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그리고 그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고 고통스럽다. 결국 우리가 ‘느낀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그것이 무너질 때 사람은 자신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과학과 사회가 이 질환을 이해하고, 더 나은 치료법과 지원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